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SM)가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을 배출해온 명문 학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학교의 패션 마스터 과정 졸업생 명단은 패션 아이콘들의 롤콜과도 같지만, 파리 아뜰리에부터 미디어, 이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을 이끄는 수백 명의 졸업생들 역시 만만찮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상업적 압박 없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학사 과정에서도 많은 신예들이 탄생한다. 최근 킹스크로스 캠퍼스의 넓은 홀에서 열린 졸업 작품전은 과감한 창의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앤디 포마리코는 카니발을 연상시키는 작품들로 눈길을 끌었는데, 폐품으로 만든 화려한 플로트와 녹색 페인트를 칠한 모델이 문틀에 매달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리누스 스튜벤은 Y2K와 애시드 풍을 결합한 컬렉션에서 휴지 롤로 만든 패브릭을 덧댄 털 부츠, 종아리 부분을 재봉한 트랙 팬츠, 분홍색 리드줄로 로봇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모델 등을 통해 유머러스한 감각을 발휘했다. (매튜 데이비드 앤드루스의 비를 머금은 듯한 윈드블로운 룩도 특별한 언급을 할 만하다. 모자에 부착된 스프링클러까지 더해진 이 작품은 기교를 넘어 섬뜩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컬렉션들은 시각적 효과와 깊은 메시지를 조화롭게 담아낸 작품들이었다. 티미솔라 샤산야는 라고스와 런던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어깨 위로 쌓아 올린 셔츠와 6피트 막대에 펄럭이는 돛 같은 탑 등 과장된 비율로 정교한 미학을 완성했다. 마리 슐체는 생명력 넘치는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춰, 생실크 스트립으로 제작한 세련된 아우터에서 천 조각들이 가방과 신발로 튀어나오는 장난기 어린 디테일을 선보였다.
가장 주목받은 작가는 팔레스타인 라말라 출신의 아얌 하산이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CSM 입학을 이뤄낸 그는 팔레스타인의 전통 공예와 난민의 정체성, 회복력을 주제로 한 강렬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금속 갑옷을 연상시키는 삼각형 디테일은 보호의 전통을 상징했고, 파괴된 아부 슈샤 마을을 기리는 작품은 역사적인 직조 패턴과 손상된 오간자를 결합했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하산의 어머니가 직접 짠 회색과 자홍색 텍스타일을 헤드스카프로 연출한 모델이 등장할 때였다. "어머니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실 수 없지만, 이렇게 함께하신다"는 그의 말이 관객들의 마음을 적셨다.
버버리의 다니엘 리(전 좌석에서 이색적인 사운드트랙에 박자를 맞추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날의 최고 수상자는... [중략] 학생들이 직접 뽑은 특별상 역시 모두 값진 주인공들에게 돌아갔다.
2위를 차지한 영국-파키스탄계 디자이너 하시브 하산은 그레 부인의 드레이핑 기술과 파키스탄 빈티지 우표에서 영감을 얻은 정교한 컬렉션으로 호평을 받았다. 먼지 낀 블루 레더로 제작한 샬와르 카미즈에 아랍 캘리그래피를 더한 현대적 해석이 특히 눈에 띄었으며, 파키스탄 국기를 연상시키는 주름진 녹색 모티프가 돋보이는 흐르는 백색 가운도 빼어났다. "파키스탄 장인들과의 협업이 핵심이었다"는 그는 신발, 크로셰 기도 모자, 직조 드로스트링 등을 현지 공예가들과 함께 제작한 과정을 설명하며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내 정체성을 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1위를 차지한 한나 스미스는 철제 문양에서 영감을 받은 어댑티브 패션 컬렉션을 선보였다. "휠체어를 신체의 자연스러운 연장으로 여기고 싶었다"는 그녀는 매듭 레더 리본이 모델 등 뒤로 흐르는 듯한 디자인과 휠체어를 우아하게 감싸는 트레인 형태의 울 소재 테일러링으로 기술력을 입증했다.
가장 도발적인 순간은 미국 디자이너 마이아 하스바니가 선사했다. 텍사스 UFO 추락 전설을 모티프로 한 그녀의 컬렉션은 외계 생명체에 의해 변형된 인간을 초현실적이면서도 화려한 형태로 재해석했다. 한스 벨머나 루이스 부르주아 조각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하이힐 펌프와 은은한 니트 작품들은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에리카 바두가 빌보드 '위민 인 뮤직' 행사에서 입고 화제를 모은 "부티 슈트"의 제작자로도 알려져 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하스바니의 피날레는 12피트 높이의 풍선 드레스로, 우레 같은 박수를 이끌어냈다. 그녀가 최고 상을 수상하자 관객들은 다시 한번 열광했다. 창의성보다 상업성을 우선시하는 패션계의 현실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