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그리고 그녀들의 저택을 찾아온 위풍당당한 여인들.

“그녀는 날씨를 지배했죠.” 안젤리카 휴스턴이 조용한 감탄과 함께 회상한다. 로스앤젤레스 근처 자택에서 전화로 이야기하는 이 전설적인 배우는 어린 시절 아일랜드 서부에 있던 가족 저택을 자주 찾았던 강인한 여성들 중 한 명을 떠올린다. 그 주인공은 헴필 부인으로, 남편과 함께 갤웨이 카운티의 거친 풍경 속에 자리한 휴스턴 가의 저택에서 저녁 식사와 사냥을 즐기곤 했다. 휴스턴은 이 귀족 여성이 겨울밤 식당에서 걸어나와 문을 활짝 열고 차가운 밤공기에 손을 내밀더니 “내일은 사냥을 할 수 없을 거요”라고 선언하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면 남자들은] 뒤로 물러나 주사위 놀이를 하곤 했죠.” 휴스턴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항상 그녀의 말을 들었어요—그녀는 결코 틀리지 않았으니까.”

이런 헴필 부인의 모습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제로로 향해에 등장하는 완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여성 가장, 트레실리언 부인에게서도 조금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은 현재 BBC에서 3부작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BritBox에서 스트리밍 중이다. 휴스턴은 데번셔 해안가의 저택 ‘걸스 포인트’를 자신의 왕국이자 감시탑처럼 굳건히 지키는 날카로운 눈빛의 침상 생활자 역할을 맡았다. 남편이 인근 만에서 익사한 지 15년이 지난 후, 트레실리언 부인의 삶은 불평으로 가득한 일상에 갇혔다: 맞은편에 자리한 화려한 리조트를 비난하고, 런던의 가십란을 훑어보며, 침실 벨을 impatiently 울려 집안 일꾮들을 부르는 것. 그러던 중 그녀는 유산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소원해진 친척들을 여름 방문으로 불러모은다. 이 그룹에는 테니스 챔피언이자 바람둥이 조카, 그의 전 아내와 현재 아내, 동부에서 온 망신을 당한 사촌, 그리고 가족 변호사가 포함된다. 침실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이들을 “뱀들의 둥지”라며 경멸한다.

“[트레실리언 부인은] 대부분 환경의 산물이었던 것 같아요.” 휴스턴이 이 인물에 대해 말한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발판을 잃고 그저 연명해왔죠. 행복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삶을 통제하는 방법을 찾았어요. 그리고 그녀는 놓치는 게 거의 없어요—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죠.” 크리스티의 전형적인 스타일대로, 이 가족 재회는 살인, 배신, 그리고 복잡한 살인자 추적으로 이어진다.

휴스턴은 이런 역학 관계를 잘 이해한다—그녀 자신의 빛나는 독특한 가족도 크리스티의 이야기를 형성한 특권, 권력, 불륜, 음모의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할아버지 월터 휴스턴은 1930~40년대 브로드웨이 스타에서 할리우드 배우로 전향했고, 아버지 존 휴스턴은 할리우드 황금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화 제작자 중 한 명이었다. 가족은 스코틀랜드-아일랜드 혈통이었고, 1940년대 후반 하원 비미 활동 위원회가 할리우드의 공산당 연계 의혹(대부분 근거 없음)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존 휴스턴은 캘리포니아를 떠나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휴스턴이 2013년 회고록 막 전해진 이야기에서 밝혔듯,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가족의 110에이커 규모 아일랜드 저택 ‘세인트 클레란스’에서 자랐다. 외딴 곳에 위치한 18세기 조지아 양식 저택은 귀족, 배우, 작가들의 행렬이 이어졌다—피터 오툴, 존 스타인벡, 말론 브란도, 몽고메리 클리프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휴스턴 가의 남자들은 종종 자리를 비웠다—할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야만인과 기생이나 부적응자들 같은 영화 작업으로 해외를 떠돌았다. 대신 어린 안젤리카는 이탈리아 출신의 열정적인 전직 발레리나이자 세련된 감각의 어머니와 그들의 집을 찾은 위풍당당한 여인들에게 의해 길러졌다.

휴스턴은 세인트 클레란스를 “남성 중심적이지만 여전히 강인하고 필수불가결한 여성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공간으로 묘사한다. 그중에는 도로시 제이킨스, 아이리스 트리, 폴린 드 로스차일드, 그리고 아버지가 “아름다운 마녀들”이라 부른 1920년대 아일랜드 사교계 명사들인 기네스 자매들도 있었다. 휴스턴은 그들을 “강인하면서도 생생한 존재감, 매우 아름답지만 특이한 방식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또한 20세기 가장 뛰어난 여성 작가 중 한 명인 카슨 매컬러스가 만성 질병으로 허약한 상태로 구급차를 타고 방문해 침대에서만 지냈던 모습도 회상한다. “그녀를 고전적인 미인이라고 부르긴 어렵죠.” 휴스턴이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눈에 띄었어요—가느다란 목 위로 커다란 눈과 코가 돋보였고, 여자라기보다는 아이 같았죠. 연약했어요. 그녀와 아버지의 조합은 꽤 이상했어요.” 매컬러스는 떠난 지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 방문객들 사이에서 휴스턴은 고딕 호러와 동화 속에 빠져 긴 시간을 홀로 보냈다. 그녀는 찰스 애덤스의 만화(특히 모티시아), 소에 찔려 죽은 투우사 마놀레테의 사진, 그림 동화에 매료되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를 움직였어요.” 그녀는 말한다. “두려움과 아름다움의 조합—거의 오페라 같았죠. 아름답지만 공포로 가득했어요.” 이 시기 그녀는 맥베스의 마녀 중 한 명으로 첫 연기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런 강렬한 환경 속에서 휴스턴은 종종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옷을 입으며 그 감정을 즐기곤 했다. “약간 에드워드 고어리 같은 분위기였죠.” 그녀는 회상한다. “나는 링릿 머리, 빅토리아 드레스, 카메오를 착용했어요—그런 스타일이 정말 끌렸어요.” 부모의 이혼 후 웨스트 런던으로 간 그녀에게도 이런 기벽은 이어졌다. 리처드 애버던, 데릭 베일리, 밥 리처드슨과의 초기 사진 촬영과 첫 연기 작업 사이에서 그녀는 보헤미안 문화에 빠져 디르크 보고드, 마리안 페이스풀, 제임스 폭스 같은 인물들과 어울렸다. “일부는 현실적이었고, 일부는 공상적이었죠.” 그녀는 말한다. “일종의 빅토리아 시대 로맨스 같았어요.”

1971년 영국에서의 안젤리카 휴스턴.
사진: 게티 이미지

당연하게도, 휴스턴은 1970년대부터 미국에 살았음에도 영국과 유럽과의 연결고리를 더 강하게 느껴왔다. 그녀는 모티시아 애덤스부터 그랜드 하이 위치, 신데렐라의 악계모까지 고딕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던 배경을 어린 시절의 환상과 주변의 위대한 여성들에게 돌린다. “고딕 호러와 고귀한 여성들 사이에는 교차점이 있어요… 그 둘은 내 역사 속에서 합쳐졌죠.” 그녀는 말한다.

침대에 갇힌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트레실리언 부인을 연기한 것에 대해 휴스턴은 웃으며 말한다: “정말 좋았어요. 일어나서, 일하러 가고, 침대에 누웠죠. 그러고는 일터에서 침대에서 나와 집에 가서 다시 침대에 누웠어요.”

돌이켜보면, 그녀는 트레실리언 부인을 자신의 평생의 향수에 비춰본다. “분명히 과거를 돌아보는—거의 재구성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한다. “그 역할을 체화하는 건… 오래된 레이스를 발견하는 것과 같아요. 레이스가 오랫동안 거기 있었지만, 당신은 막 그것을 재발견하는 거죠.”